방충망
너도 알고 있었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몸으로 방충망을 부여잡고 있었지
어찌 해야 할지 몰라서, 너를 가만히 쳐다 봤더니
옆에서 할아버지가 방충망에 손가락을 튕겼어
퉁ㅡ 소리가 나고,
너는 날개짓 한 번 없이 16층에서부터 낙하했지
내가 부여잡고 있는 방충망은
누가 손가락을 부딪혀줄까
방충망
너도 알고 있었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몸으로 방충망을 부여잡고 있었지
어찌 해야 할지 몰라서, 너를 가만히 쳐다 봤더니
옆에서 할아버지가 방충망에 손가락을 튕겼어
퉁ㅡ 소리가 나고,
너는 날개짓 한 번 없이 16층에서부터 낙하했지
내가 부여잡고 있는 방충망은
누가 손가락을 부딪혀줄까
신앙
다시 한 번만 만나고 싶다
한 번만 더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으면 좋겠고,
한 번만 더 앉아있는 당신의 등 허리를
손과 발로 초승달 마냥 둥글게 감싸고 누워있고 싶다.
하얗고 검은 양털 같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고 싶다.
뿌옇게 흐려졌던 생각들이 속절없이 밀려 들어온다.
-
내가 믿던 것들은 모두 멍청한 쓰레기였고
모두 틀렸기를
당신이 믿던 모든 것이 옳았으며
그것들에 따듯함과 안락함이 함께하기를
꼬리
별 일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은 일이 있었다.
그 일을 곱씹다 문득
오후에 만났던 하얀 강아지 친구가 생각났다.
그 친구는 하얀 꼬리를 힘차게 돌리며
내 작업실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었다.
-나에겐 그런 꼬리가 없어서 다행이다
별것도 아닌 일에 하루 종일 흔들거리고 돌아가고 있었을 나의 꼬리를 상상하니
민망하고 조금 씁쓸해졌다.
갈색의 끈과 길고 긴 다이아몬드
어떤 생각들은 문장으로 입 밖에 내기가 어렵습니다.
네 다섯 단어로 이루어진 아주 간단한 문장인데 말이죠.
머릿속을 맴돌기만 할 뿐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간신히 어떤 단어를 내뱉어봅니다.
네 다섯 단어를 더 잘게 쪼개고, 뭉개고 섞어 만든 단어들을-
새벽녘의 물 안개-
밤 바다의 잔잔함
낚시꾼-
갈색의 끈과 길고 긴 다이아몬드-
늘어진 단어들은 또 다른 형상이 됩니다.
형상을 또 다시 뒤섞고 쪼갭니다.
대체 뭐가 겁이 나서 이렇게 숨기게 되는 걸까요?
쪼개고 숨기면서 까지 전달하려 용을 쓰는 게
우스울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딱 한 번만 쳐다봐주세요.
무언가 말하려고 했다는 것 만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리움인가 싶어 또 보네요
문지르며 맴도는
미지근한 역함-
쇠는 덜컹거리고
빛은 밝았다 어두웠다-
가득 차 있지만 아무도 없었고
고요했지만 시끄러운 소음이 귀를 찢을 듯 했고
물방울을 삼킨 목구멍은 시큰거리고-
언제나 그 곳에-
도살장 가축의 기분-
사실은 온기를 느꼈을까요?
그리웠을까요?
냄새나는 역한 기억이
어쩐지 낯설지 않아
그리움인가 싶어
또 보네요
종이꽃
거짓말밖에 없는 토양이더라도,
종이꽃 한 송이 정도는 진실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지 말아야지 해도,
씨앗에서 진짜 새싹이 나오진 않을까
나도 모르게 기대했었나보다.
종이꽃을 만들면서도
계속 흙바닥을 곁눈질하게 된다.
어쩌면.
무섭고 공포스러운 것들을 이겨내는 방법
물에 빠졌을 때의 기억은 우울함에 허덕일 때의 감각과 비슷하다.
숨 쉬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무것도 잡을 수 없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形(형)이 없는 것은 공포를 낳는다.
무형은 무형을 낳으며 번식한다.
언제나처럼 우울함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눈을 뜬 날
떠밀려온 흙 바닥에 처박혀 몸을 떨던 중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형이 공포를 낳는다면, 공포에 형태를 만들어낸다면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이 봤다면 뜬금없다고 웃을지 몰라도 나는 나름 절박했다.
덕분에-
이제 우울함에 휩쓸릴 때면, 서툴지만 눈을 감고 감각에 形(형)을 그려본다.
1. 사람은 물에 뜰 수 있다.
2. 숨이 막혀오면 몸을 일자로 만들어 물과 닿는 몸의 면적을 넓혀준다.
3.몸에 힘을 빼고 버틴다.
形(형)을 상상하는 것은 좀 우스꽝스럽지만 도움이 된다.
신뢰할 수 없는 것들에 속해 있는 인생입니다.
나는 의심이 많아요
그래서 시간을 신뢰할 수 없어요
눈에 보이지도-
냄새가 맡아지지도-
소리가 나지도 않잖아요
함께 보낸 순간들의 기억들도
모두 마찬가지예요
신뢰할 수 없는 것들.
그러니까,
의심 많은 나를 위해
당신의 시간을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주세요
비싸고 아름다울 필요 없어요
같이 까먹었던 사탕의 껍데기나
당신이 줬던 선물의 포장끈
낙서와 글을 끄적거렸던 구겨진 영수증 쪼가리도 좋아요
시간을 보고 만질 수 있게-
더듬고 기억할 수 있게 해주세요
신뢰할 수 없는 것들에 속해 있는 인생입니다.
목표는
어떻게든 증거를-
나와 당신과의 사이에
어떤 사건들이 정말로 존재했다는 증거를-
설령 후에 이 물체가 부식되고 사라져버릴지라도 괜찮아요
물체의 모양을 묘사하는 글을 쓰고
그 글을 언어로 읊조려 녹음하고
그림으로 그려 표현하고
사진을 찍어 인쇄하고
가능한 한 계속해서 남기고 증명할게요
그러면
모든 것이 전부 실제는 아니었더라도
무언가는 정말로 존재하긴 했다는 것을 알리는
연약한 머리카락 한 올은 남겠죠
그럼 마지막의 마지막엔
당신이 그 머리카락 한 올을 그려주세요
차가운 것과 차가운 것이 맞닿으면 온기가 생긴다.
완전히 똑같이 차가운 것은 없기에-
나의 꼬리는 너의 꼬리보다 차갑고
너의 손등은 나의 손등보다 차갑다.
차가운 것이 상대의 덜 차가운 곳을 향해 파고들며,
그렇게 온기를 만들어 낸다.
서늘한 손
숨 막히게 날카로운 밤
내가 가진 모든 차가운 것들을 침대 위에 쏟아본다
식어버린 눈과 추억들
의미가 퇴색 된 공허한 물건들
양손 가득하게 움켜쥐고 문지른다
까가각-
날카로운 마찰음과 함께
은근한 온기가 느껴진다.
더 많은 온기를 찾아 손은 더 바쁘게 움직인다.
까가각- 까가각-
미미한 온기는 금방 사라지겠지만 걱정은 없다
아직 차가운 것들은 많이 남아있으니까
텅 비었던 주머니 속에서 벌써
까가각- 까가각-
얼음 소리
유통기한 지난 사랑
유통기한이 조금 지난 사랑을 주곤 하네요
어디 곰팡이가 폈나-
상하지는 않았나-
냄새도 살짝 맡아보고
여러 의심 속에 마음이 편치 않지만
사랑은 사랑이겠죠
아마도 너무 바빴겠죠
아마도 너무 깊숙하게 보관했겠죠
아마도 너무 소중하게 아껴 놨겠죠
아마도
아마도
아마도
아마
지우개 도소하기
더러워진 지우개를 버리고, 깨끗한 새 지우개를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연필로 지우개를 찔러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까만 흑심이 촘촘하게 스며들며 지우개 위에 멍 자국을 만들었다.
그래서 지우개로 지울 것 없는 종이 위를 계속 문지르기 시작했다.
의미 없는 열기 속에 지우개는 닳아 없어져 갔다.
지금도 여전히 비슷한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이번에는 새 지우개를 가질 수 없을 것 같다.
망상병
비가 내리고 나니, 오랜만에 바람도 시원하고 공기도 맑아 산책겸 동네를 걸었다.
두 세발자국 걸을때마다 바닥에서 지렁이를 발견했다.
어딘가를 향해 열심히 움직이는 지렁이도 있었고
형체를 알아볼수 없을만큼 물에 불고 밟혀 뭉개진 지렁이도 있었고
뭉개진 나뭇가지같은 몸을 이끌고 움직이려고 노력하는 지렁이도 있었다.
비가 그치고 난 직후, 가장 깨끗하고 시원한 상태일때 죽은 지렁이들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다.
아마 지렁이들이 비에 젖어 생기넘치는 나무와 높아진 하늘을 바라보며 걸을 사람들의 시야가 닿기 힘든 곳에 있기에 그런게 아닐까 싶다.
비에 떨궈진 풀쪼가리와 잔나무가지들이 지렁이와 뒤섞여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길바닥-
한걸음 한걸음이 신중해진다.
길바닥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걷다보면 온갖 지렁이 군상을 보곤 하는데,
높은 위치에서 바라보는 그들은 연약하고 안타까운 존재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가끔 여유가 있을 때엔 나름의 연민으로 그들을 도와주기도 한다.
안전한 풀숲으로 옮겨준다거나, 말라가는 몸에 약간의 물을 뿌려준다거나, 사람들이 밟지못하게 앉아서 에스코드 해준다거나-
항상은 아니고 내가 내킬때만.
귀찮거나, 어떻게 도와줘야할지 모를 난감한 상황들은 그냥 바라만 보다 지나간다.
내가 지렁이의 수호천사도 아니니 모든 지렁이를 도와줄 의무는 없으니까-
또 어쩌면 도와준다고 한 선의의 행동들이 사실은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을 수도 있다.
반쯤 바닥에 짓눌려 온전한 머리만 치켜들고 까딱거리는 지렁이를 바라보다, 난감하게 돌아서며 상상했다.
어쩌면 지렁이들에게 나는 신이 아닐까
변덕에 의해 나를 살리고 죽이는 의중을 알 수 없는 신
-
나약한 신이시여
왜 나를 고통 속으로 밀어넣으셨습니까
당신을 믿으려 노력하던 나를 왜 시험에 들게 하셨습니까
삶을 사랑하려 노력하던 나를 왜 짓밟으셨습니까
대체 어떤 큰 뜻이 있기에 나를 이리 만드셨습니까
나약한 신이시여
나를 왜 내버려두셨습니까
고통속에 어찌할바를 모르는 나를 왜 방관하셨습니까
차라리 목숨을 거두어주길, 이 끝없는 고통을 끝내주길 목이 터져라 외쳤는데
왜 나를 외면하셨습니까
-
찰나의 상상이 망상으로 흘러가는 사이,
나뭇가지와 지렁이는 뭐가 다를까 잠깐 또 딴 생각을 한다.
레이어-레이어
머리를 쾅 부딪혔을 때
뺨을 쾅 부딪혔을 때
순간의 통증
저릿하게 시큰거리며-
목과 귓덜미가 찌르르 소리를 내며-
얼얼하고 따끈한 열기가 찾아온다.
갑작스러운 충격은
신체의 일방적인 통제를 멈춰준다
잠시의 고요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아
몸이 균형을 잃을 때의 순간처럼
몸살에 걸려
몸이 반쯤 부유하는 순간처럼
붕- 떠있는
층과 층 사이의 공간
허술한 지점의 공백
응시
과거에 있는 것들의 눈은
과거의- 혹은 더 먼 미래에 있을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나를 보고 있지만 그 눈에는 현재의 내가 맺히지 않습니다.
나는 없는 존재입니다.
1
우리는 계속해서 이별과 충돌을 겪으며 살아간다.
이별과 충돌은 필연적으로 어떤 것의 소멸을 가져오고, 그 속에서 귀신(허상)이 태어난다.
수많은 허상 속에서 내가 뭘 어떻게 했어야 할까 하는 후회를 안고 살아간다.
귀신에 에워싸이는 순간, 현재는 끊임없이 과거로 회귀하고 미래는 멈춘 채 다가오지 않는다.
현재를 살아가고 싶다면 과거로부터 되살아나야 한다.
과거로부터 되살아나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 내가 만들어냈던 아름다운 귀신들을 그러모아본다.
그들을 한 곳에 모으고, 팔을 벌려 내가 그들을 에워싸본다.
0
생명체가 죽는 순간, 그것은 사물(死物)이 된다.
생물이 무생물이 되어버리는 기묘한 순간, 물질화 된 생명체는 딱딱하고 차갑게 식는다.
냄새 나고 썩어가는, 혹은 버석 해져가는 덩어리에 불과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사물이 된 생명체는 역설적이게도,
살아있었을 때 보다 더욱 따뜻하고 찬란한 생명력으로 가득 차 보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생명력을 잃어버림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그것이 가졌을 과거의 모습을 상상하고
그리워하고, 애틋하게 만드는 것이다.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무관심하게 흘러가던 어떤 생명(삶)이 충돌하는 순간,
그 순간에 아름다운 귀신(허상)이 탄생한다.
*2023 작업 노트 中/
죽음을 그리워했던 시기가 있습니다.
그 시기의 안녕-은 재밌고 좋은 면도 있었지만, 유독 폭력적이고 강압적으로 굴곤 했습니다.
안녕-이 나의 얼굴에 물에 흠뻑 젖은 수건을 강제로 감싸 놓고는,
다른 사람들의 발자국을 보며 따라가면 되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냐며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얼굴이 물에 젖은 묵직한 수건에 감싸인 채로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요?
수건은 내 피부에 밀착하고 숨을 쉬기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무섭고 고통스러워서 안녕-의 말처럼 사람들의 발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기어갔습니다.
그러나 발소리는 가까워질 만하면 멀어지기를 수십 번 반복했습니다.
숨쉬기가 버거워 잠깐 멈추고 싶었지만,
그 사이 더 이상 발소리가 들리지 않게 될 것이 두려워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끝없이 버겁기만 한 날들을 보내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굴에 수건을 두르고 평생 동안 바닥을 기어 다닐 제 모습이 상상 돼 우습고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냥 멈춰버렸습니다.
더 이상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기어가지 않고
물에 젖은 수건이 나를 빨리 질식 시켜 주기 만을 빌었습니다.
기다리는 것에 지칠 즈음,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다들 여기에 있나요, 아니면 거기에 있나요?
조용한 숨소리, 그리고 희미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옵니다.
답답함에 손을 허우적거리면 축축한 수건의 감촉이 느껴집니다.
수건을 뚫고 올라오는 연약한 숨결의 촉감이 느껴집니다.
.
미숙한 시공
균열
틈새 벌어진 것들이
생물을 살아가게 한다.
이끼와 곰팡이
쥐구멍과 벌레들의 통로
틈 ㅣ 새
틈 ㅣ 새
틈 ㅣ 새
틈 ㅣ 새를
막는 것들
균열이 언짢게 쳐다본다
미숙함에 실소를 날리고
시멘트를 들이 붓는다.
내가 죽인거야
당신이 죽인거야
*2021-4-18.txt
여기서 벗어난 것들이 너무 좋아요
이미 떠난 것들
갑갑한 곳에서 떠난 것들
떠났음에도 남아있는 것들
남아있지만 사라진 것들.
안녕, 연습하기
안녕-하세요
안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안녕-했으면 좋겠습니다